팔레스타인 축구 국가대표팀
1. 개요
팔레스타인의 축구 국가대표팀을 다루는 항목.
홈구장은 파이잘 알 후세이니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이며 감독은 공석이다. 전사(Al-Fida'i), 기사(Al-Fursan), 가나안의 사자 (Osoud Canaan)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의 압력으로 오랫동안 제대로 국가대표팀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눈물겨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오슬로 협정이 맺어지면서 1995년에 FIFA에 가입해 국제적 인정을 받았으나 현재까지도 이스라엘 눈치를 봐가며 유지되고 있다. 해외 출국을 하려고 해도 이런저런 핑계로 못 나가게 했다고. 이러다보니 당연히 축구실력은 크게 뒤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2014년 AFC 챌린지컵 우승이 건국 이래 가장 큰 대회 우승.
동년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같은 조에서 유력한 강호인 오만을 깨고 조 1위로 16강에 올랐다! 허나 일본한테 0:4로 패배했다.
2014년 10월 2일 디에고 마라도나가 감독직으로 부임한다는 기사가 실렸으나 협상이 결렬된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2015년 아시안컵에서는 사에브 젠데야 감독이 팔레스타인 팀의 감독을 맡았다. 2015 호주 아시안컵 본선에 사상 처음 진출했는데 또 일본에게 0-4로 패했고 3전전패 최다실점으로 16위 꼴찌를 기록했다.
2019년 AFC 아시안컵 예선에서 오만, 몰디브, 부탄과 한 조가 되었고 3차 예선 출전 팀들 중에 맨 먼저 아시안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다.
현재 축구실력은 중동에서도 최하위권이지만, 점점 전력이 보강되면서 무시할수는 없는 팀이 되어가고 있다. 이들의 "전력보강" 방법은 바로 '''남미산 이중국적 선수들의 대표팀 합류.'''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침공과 분쟁과정에서 수많은 난민들이 발생, 이들의 대다수가 남미, 특히 칠레로 많이 피난을 떠나 그곳에서 정착을 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들의 후손들이 팔레스타인계 칠레인으로써 생활하는데, 남미에서도 한 끗빨 날리는 칠레 축구계에 진출한 팔레스타인계 칠레인들이 2010년대 후반부터 점차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들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아예 데포르티보 팔레스티노라는 이름만 봐도 딱 정체성이 드러나는 구단이 칠레 프로리그에서 활동할 정도. 칠레 1부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팀이다. 호나탄 칸티야나, 알렉시스 노람부에나, 파블로 탐부리니 등 팔레스타인 대표팀 최근 소집명단을 보면, 알~자 돌림의 특유의 중동식 이름과는 이질감이 드는 남미식 이름을 많이 볼수 있는 이유가 이것 때문. 칠레계 선수들의 합류 이후 다른 유럽, 아시아등지에서도 나티므 알바다위, 아마르 카두라 등 팔레스타인계 선수들을 찾아내서 대표팀에 영입하는 전략을 쓰기 시작하면서, 팔레스타인은 꽤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을 구축하며 비록 약체들 위주이긴 하지만, 2017년에 치른 A매치 7경기에서 전승을 하는 기염을 토한다. 앞서 서술된 2019 AFC 아시안컵 예선에서도 25득점 2실점 5전 전승의 압도적 성적으로 통과한다. 첫 출전이었던 지난 대회와 달리 이번 대회에서는 그리 만만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측은 바로 최근의 이러한 흐름에서 기인한다.
그렇게 진출한 아시안컵 본선 첫번째 경기에서 만만치 않은 시리아를 만나 걸어잠그는 축구를 시전하며 한명이 퇴장당했음에도 0:0 무승부를 거두었다. 이렇게 따낸 승점 1점이 팔레스타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아시안컵 첫 승점이다.
아직 한국과 A매치를 치르지 않은 나라 중 하나인데 유소년 대표팀으로 범위를 넓히면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조별리그 3차전에서 한국이 윤빛가람, 박주영, 박희성의 골로 3:0으로 이긴 것이 전부다.
현재 유니폼 스폰서는 자코 이다.
2. 역대전적
2.1. FIFA 월드컵
2.2. AFC 아시안컵
2000년부터 참가해 계속해서 예선탈락을 했으나 2014년 AFC 챌린지컵 우승팀 자격으로 2015년 아시안컵에서 첫 본선 출전을 하게 되었다.